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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양실 (2015-12-13 16:21:17, Hit : 914, Vote : 106)
Subject  
   칭찬받는 교회(창립주일 설교 2015.12.13.)
칭찬받는 교회        (2015.12.6. 창립주일)
   (마25:34-40)

오늘 교회창립 55주년을 맞으면서 ‘칭찬받는 교회’란 제목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원로목사로서 지난 8년의 홍익교회를 되돌아보면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교회여’라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후임자 최영걸 목사님 부부가 얼마나 열심을 다해 목회하셨는지, 아마 서울노회에서 가장 열심을 다한 목사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때는 ‘저러시다가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아울러 젊은 목사님이 휘몰아치는 목회를 함에도 열심을 다하여 협력하시는 당회원들과 중직, 제직들과 성도들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사실, 아무리 담임목사가 열성적으로 목회하려해도 교회 지도자들이나 성도들이 딴죽 걸면서 협력하지 않는다면 교회 발전을 이룰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주님 오실 때까지 이런 귀한 모습을 잘 유지하는 홍익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주님으로부터 더욱 칭찬받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배우고자 합니다. 마24장은 예수님이 마지막 때에 대한 징조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말씀했다면 마25장은 마지막 때에 우리 성도들이 준비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일러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대림절 기간으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기다리는 거룩한 기간입니다.

이 기간을 맞으면서 마25장 말씀을 잘 명심해야 합니다. 마25장에서는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 세 가지 비유 안에는 칭찬 받는 자들과 책망 받는 자들이 대조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잘 깨닫고 순종함으로 다 칭찬받는 성도들과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칭찬받으려면 신앙의 등불을 밝히는 데 힘써야 합니다.
1-13절 열 처녀 비유 내용은 무엇입니까? 유대 나라의 결혼 풍습은 밤에 신랑이 그의 친구들과 함께 신부를 맞으러 오면 신부의 친구들이 나가서 그들을 맞아 함께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명심할 것은 열 처녀가 다 택함은 받았으나 그 중의 다섯만이 칭찬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으나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은 등에 기름을 넣었을 뿐 아니라 여분의 그릇에 기름을 따로 준비해 갔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신랑이 일찍 도착했더라면 등에 담은 기름만으로도 등불이 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25:5에 보면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라고 했습니다.

인간 편에서 볼 때 주님의 재림은 너무 더딘 것 같습니다. 열 처녀 모두가 졸며 잤다는 것은 주의 재림 직전에 기독교계 전체가 해이해질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눅18:8에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경고하신 것 같습니다. 열 처녀들이 다 졸고 있는 깊은 밤중에 큰 소리가 들립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나와 맞으라”

열 처녀들이 혼비백산하여 깨어 보니 등에 기름이 다하여 불이 깜박거립니다. 지혜로운 처녀들은 급히 예비한 기름을 등에 넣자 불이 살아납니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들은 여기저기 사정하다가 소용이 없자 기름 가게로 달려갑니다. 그 사이에 신랑 일행은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히고 맙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닫힌 문을 두드리며 호소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는 냉정한 대답만 들릴 뿐이었습니다. 다섯 처녀들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열 처녀로 간택되던 순간부터 많은 돈을 들여가며 최고급 화장과 화려한 의상으로 한껏 자기의 미모를 과시하면서 준비해 왔는데 혼인잔치에 들어가지도 못하다니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가 그런 꼴 당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칭찬받고 주님의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 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첫째 등을 준비해야 합니다. 등은 교인들의 신앙고백을 가리킵니다. 신앙고백인 사도신경 그대로 믿고 고백하는 삶을 살므로 성도로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둘째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은 신앙입니다. 신앙의 기름은 성령을 통해서 공급받습니다. 늘 기도생활, 말씀생활을 통해 성령충만함으로 언제나 신앙의 기름이 부족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을 밝혀야 합니다. 아무리 등과 기름이 준비되었을지라도 빛이 꺼졌다면 여전히 책망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의 빛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은 마5:16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착한 행실, 곧 선행을 말합니다. 아무리 우리 마음에 선을 가졌을지라도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꺼진 등불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선을 행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 성도들이나 교회에 대해서 언제나 빛을 발해주기를 기대하고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아무 빛도 발하지 않고 꺼진 등불, 불꺼진 교회처럼 보인다면 실망하면서 비난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이 빛을 발하기는커녕 어둠만 던져주고 있음으로 사회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은퇴한 후 8년 동안 ‘소리지’를 발간하면서 매일 한국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인터넷 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는 ‘어쩌다가 한국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나?’ 개탄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 뉴스를 보면 교회 돈 수십억을 횡령한 목사, 칼부림하는 전 합동측 총무, 휴대폰으로 여성들의 특정 부위를 몰래 찍다 들통 난 부목사 등등 연일 터지는 저질 목사들의 비행 소식에 가슴이 터집니다.

이제는 제가 어디 가서 목사란 말을 하기도 부끄럽습니다. 또한 저질 장로들이 한국교회를 먹칠하고 있습니다. 금년 들어 신원그룹의 박성철 회장은 수십억의 조세포탈로 고발을 당했는데 성결교회 장로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정치판을 흔들었던 경남기업 성원종 회장도 서산 어느 교회 장로였는데 어떠한 행동을 보였습니까?

경남기업의 자금을 자기의 출세를 위해 마음대로 도용하다가 수감될 위기에 처하자 점쟁이를 찾아다니고, 여기저기 구명운동을 벌였지만, 수포로 돌아가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방산비리로 510억을 횡령하다 수감된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도 돈암동 어느 교회 장로인데 국민일보에서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던 분입니다.

그는 교회 건축위원장을 하면서 비리로 벌어들인 검은 돈을 교회건축에 사용하고 교회 안에 자기 사무실까지 만들고 비리를 숨기는 아지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자기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교회를 이용합니까? 그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다가 결국 패가망신을 당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할 때입니다.

홍익의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제 주님이 오실 날이 매우 가까운 때에 우리 성도들과 우리 홍익교회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가정과 이웃과 사회 앞에 신앙의 등불을 환히 밝힘으로 더욱 칭찬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칭찬받으려면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14-30절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주인이 사업차 타국에 가기 전에 자기 종들에게 능력에 따라 어느 종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어느 종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어느 종에게 한 달란트를 맡기고 그것으로 잘 활용하여 이를 남기라고 명하였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귀국하여 종들로부터 그 동안 했던 사업을 보고 받게 되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기뻐하며 그 종들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면서 남긴 달란트를 다시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한 달란트 땅에 묻어 두었다가 그 대로 가지고 옴으로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더욱이나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는 비참한 소리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가 반드시 명심할 것은 칭찬과 책망의 기준이 ‘작은 일에 충성했느냐 아니냐?’라는 점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에게 ‘네가 큰일에 충성했구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남겼든지 두 달란트를 남겼든지 똑같이 “네가 작은 충성하였으매”라고 칭찬했습니다.

또한 한 달란트 따위야 하면서 작은 일에 등한히 했던 자를 무섭게 책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하는가, 아닌가를 보신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한번 쯤 큰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평소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는다면 책망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는 사람은 큰일에도 충성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제일 못마땅한 분은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으면서 큰 일만 꿈꾸는 자입니다. 제 친구 중 하나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만나면 화려한 팸플릿을 보이면서 자기가 계획하는 사업이 엄청난 수익이 생길 것이라고 호언장담합니다. 더욱 앞으로 사업이 성공하면 기독교방송국도 세우고 방송국 피디로 일하고 있는 우리 집 두 아들에게 큰 직책을 맡길 것이라고 하니 귀가 솔깃합니다.

그러면서 제 돈도 적지 않게 꾸어 갔습니다. 그러나 적은 일에는 등한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몇 년 동안 꿈만 쫓다가 끝났고 친구관계도 무너졌습니다. 너무 허망합니다. 목회자 중에도 그런 분이 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앞으로 큰 교회를 이룩하겠다는 비전에 불탑니다. 장기금식도 여러 번 했고 시간만 나면 여기저기 성경공부나 교회성장세미나를 열심히 찾아다닙니다.

그러면서 교인들을 돌보는 일을 너무 소홀히 함으로 교인들의 원망도 많이 받았습니다. 결국 초라한 목회자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달란트를 맡기시는 분이십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어느 정도 능력을 가진 자이지만, 자기의 재능만 믿고 슬슬 요령을 피우면서 적당히 두 달란트 정도 남겼다면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받은 재능과 은사가 얼마이든지,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열심히 순종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그 때 주님은 칭찬과 아울러 충성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시무할 당시 우리 교회에서 저와 동역한 교역자들을 헤아려 보니 전임부교역자가 20여명, 교육전도사 40여명이 됩니다. 그 중에 지금 목회를 잘 하는 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 구분은 무엇입니까? 부교역자나 교육전도사 시절에 적은 일에 충성을 다한 분들을 지금 많은 달란트를 받아 목회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어느 분은 시키지 않았음에도 밤늦게까지 땀 흘려 충성함으로 교인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부교역자는 재능이 많음에도 요령을 부리고 사례금이 작다고 불평합니다.

어느 날 대우가 좋은 교회의 부교육자로 떠나갑니다. 그런 분들은 지금 목회가 신통치 않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이여,  새해에 교회학교나 찬양대, 사랑방 모임, 혹은 각 기관 등에서 아무리 작은 직책을 맡았을지라도 주님이 맡기셨다는 믿음으로 충성을 다하심으로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청지기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칭찬받으려면 나눔에 힘써야 합니다.  
31-46절은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심판 날에 주님은 모든 민족을 분별하여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양편에 속한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면서 칭찬하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염소 편에 선 사람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내가 주릴 때, 목마를 때, 나그네 되었을 때, 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왜 한쪽은 칭찬받고 한쪽은 책망 받았습니까? 주님은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된 자, 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를 선대하거나 박대한 것을 내게 한 것으로 인정하느니라”  

다시 말하면 칭찬과 책망의 기준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선대했느냐, 박대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 주변에 있는 불우한 사람들 가운데 우리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점입니다. 제가 은퇴한 후에 8년 동안 반성하는 점이 있습니다. 40년 목회 동안 한국교회 풍토에 영향 받은 탓인지 너무 강자 편에 서서 능력과 기적, 은혜와 복, 성공과 승리를 강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 교회 출석하시는 교인들이 빈곤과 실패, 병고와 무능에서 벗어나 용기와 희망을 주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승리적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그런 식으로 목회하다 보니 점점 승리하는 강자들이 좋아지고 무능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약자들에 대해서는 다소 홀대 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대학입시 때에는 합격자를 주보에 발표하고 칭찬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 탓인지 가난하고 병든 교인들은 교회에 와서 늘 부끄러워합니다. 식구가 입원해서 심방가면 ‘목사님, 좋은 모습을 못 보여 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합니다. 자녀들이 대학입시 성적이 별로이고 번번한 직장을 다니지 못하면 늘 송구한 얼굴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바람직한 목회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은퇴하고 이 교회 저 교회 출석하고 뒷자리에 앉았다 돌아오면서 특별히 약자들 편에 서계신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강자들이 좋아하는 성경은 구약입니다. 구약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 “정복하고 진멸하라.” 등 은혜와 축복, 승리와 번영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 말씀들 탓인지 자기 종업원들이나 노예들을 박대하는 많은 부자 교인들이나 600만 명의 유대인들은 학살하는데 동참했던 나치의 정치가들, 부쉬 대통령 같은 기독교 정치가들이 약한 나라를 잔인하게 정복하면서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은 강자들을 두둔하는 성경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의 중심이 되는 율법을 ‘약자 보호법’이라고 해석하는 성경학자들이 있습니다.

출22장 21-24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이 율법은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출20장부터 23장까지를 시민법이요, 약자호보법이라는 해석입니다. 율법의 중심인 십계명도 잘 살펴보면 약자들을 보호하는 계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1-3계명을 보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는데,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땅의 신은 바알입니다.

바알은 어떠한 죄를 지었을지라도 자기를 경배만 하면 번영과 창대의 복을 준다는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성공과 복을 받으려는 기복주의자들이나 강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신이었습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경쟁하면 약자들은 강자들 앞에서 백전백패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우상을 금하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제4계명인 안식일에 쉬게 하려는 것도 남종이나 여종을 쉬게 하려는 계명이요, 안식년과 희년에 노예해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제5계명의 늙은 부모도 약자요, 제6계명 살인 금지나 제7계명 간음 금지, 제8계명 도둑질 금지나 제9계명 거짓증거 금지, 제10계명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는 것도 강자들로부터 약자들을 보호하시려는 뜻이 담겼다는 주장입니다.

일리 있는 해석입니다. 사실 불효나 살인, 간음이나 거짓증거, 이웃 것을 탐내는 것도 강자들이 주로 약자들에게 하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일생동안 병자나 소외된 자들, 세리나 창기들, 사마리아인과 같은 약자들과 함께 사셨을 뿐 아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자기와 약자들을 동일시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약자들을 돌아보고 도와준 것을 자기에게 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성경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삽니다. 그동안 한국교인들은 은혜와 복만 받으려고 열심을 다했지 받은 바 은혜와 복을 나누어 주는데는 너무 인색했습니다. 이제는 주머니와 창고를 열고 예수님이 자기편으로 인정하고 있는 약자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리인들인 불우한 약자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극빈자들, 병든 이들, 불우한 노인들, 의지가지없는 고아들, 노숙자들, 외국인 노동자들, 갇힌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 추운 겨울에 그들을 외면하지 말고 우리 가진 것으로 나누어 주며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그들을 돌보십시오, 그 때에 주님은 마치 자기가 받은 것처럼 기뻐하실 것입니다. 바클레이는 마태복음 주석에서 이런 귀한 예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투어스 마틴은 로마 군인이면서 크리스찬이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그가 한 시가지로 들어가고 있을 때 거지 하나가 그를 잡고 한 푼 동정을 구했습니다. 마틴은 가진 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지는 추위 때문에 시퍼렇게 되어 떨고 있었습니다. 마틴은 자기의 낡고 해어진 군인 외투를 벗어서 그것을 둘로 나누어 반을 거지에게 주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그가 하늘 보좌와 천사들과 그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로마 군복의 반쪽을 입고 계셨습니다. 한 천사가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주여 왜 주님은 낡아 해어진 군복 반쪽을 입고 계십니까? 누가 그것을 주님에게 드렸습니까?” 예수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하시기를 “나의 종 마틴이 나에게 준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시는 교우 여러분들이여. 금년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일 년 동안 많은 것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그리고 이 대림절 기간에 신앙의 등불을 환히 밝히며 작은 일에 충성을 다 할 뿐 아니라 사회적인 약자들을 사랑으로 돌보심으로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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