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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양실 (2017-05-07 17:50:56, Hit : 102, Vote : 3)
Subject  
   어린이, 어버이주일 설교(17.05.07.)
     용서와 용납의 가정        
                (골 3:13-14)

오늘 어린이와 어버이주일을 맞으면서 감사하고 싶은 것은 홍익교회가 어린이들과 노인 분들을 위해 열심히 사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어느 목사님에게 홍익교회 주보를 보여주었다니 놀랍니다. “아니, 지금 서울의 대부분 교회들은 어린이 수가 형편없이 줄어들고 있는데 홍익교회는 어린이가 이처럼 많다니 대단한 교회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홍익교회의 미래는 너무나 밝습니다.  

동시에 노인 분들을 위해 ‘청춘대학’을 만들었는데 매번 80명 이상이 출석하고 있다니, 너무나 고마운 일입니다. 수고하시는 담임목사님과 모든 교역자들, 모든 교사들, 그리고 당회원들과 제직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을 맞으면서 다시 한 번 가정의 화목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헤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이제는 가족 간에 살인을 저지르고 심지어는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 소식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음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가정 위기 시대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가정을 지키기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어린 자녀들에게나 연로하신 부모님들에게 드리는 최대의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습니까? 그 근본 요인은 용서와 용납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철부지 어린이와 연로하신 부모님, 부부 간의 허물과 잘못을 용납하고 용서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가정이 법정처럼 서로의 잘못만 따지는 곳이라면 아무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최효섭 목사님은 글을 쓰기를 “가정이란 어떤 곳인가? 세상 근심은 밖으로 문을 잠그고 평화와 위로가 안으로 잠긴 곳, 실수와 허물은 가려지고 사랑과 만족이 피어나는 꽃밭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족들의 허물이나 실수를 용서와 용납으로 가려주는 곳이 곧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불행한 가정들은 검사가 많은 곳이라면 행복한 가정은 변호사가 많은 곳입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라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용납과 용서란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 용납과 용서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용서’는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이라면 ‘용납’은 허물을 그대로 포용하고 감싸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족 간이나 교인 간에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 줄 뿐 아니라 그 허물도 용납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이 어린이주일인데 자녀교육의 기본도 용서와 용납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온통 허물투성이의 아이들을 엄마 아빠가 대소변 가려주고 아플 때 밤새도록 간호하면서 용서와 용납으로 품어줄 때 훌륭한 인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테너 가수인 엔리코 카루소는 어렸을 때 공장에서 일하면서 학교를 다닐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음악시간에 선생님에게 자기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은 “네 목소리는 너무나 시끄러우니 음악을 포기하라.”면서 너무나 가혹한 말을 했습니다. 이 말에 학생들은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카루소는 너무나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계적인 가수가 되도록 만든 것은 놀랍게도 무식한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농사를 짓는 그의 어머니는 맨발로 다니는 처지였으나 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개인 레슨비를 댔습니다. 카루소가 낙심할 때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격려했고 허물과 실수가 있을 때마다 용서와 용납의 가슴으로 품어줌으로 이탈리아 뿐 아니라 세계인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노년에 이르면 가장 가슴에 와 닫는 말이 무엇인 줄 압니까? ‘용서’와 ‘용납’입니다. 지난 5월 2일에 저의 신학교 동기들이 대전 유성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총회에서 많은 활동을 했던 아니 했던, 과거 큰 교회나 작은 교회에서 목회했던, 박사학위를 가졌던, 보잘 것 없는 학벌을 가졌던 관계없이 지금은 하나같이 대부분 연약한 노인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이 앞에는 장사가 없다.’는 옛말이 실감이 납니다. 동기들이 모여서 가장 관심을 가진 대화 내용은, 온통 화제가 되고 있는 대통령 선거가 아니고 건강문제였습니다. 대부분 자신이 건강에 어렵든지 아니면 부인들이 아픕니다. 이러한 노인 때에는 누가 허물을 용납해 주고,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 줄 때 감동이 되면서 새로운 삶의 활력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가정의 달을 맞을 때마다 제일 가슴 아픈 것은 어머님의 마지막을 잘 돌봐드리지 못했다는 후회입니다. 어머니는 90세가 넘어서면서 이상하게 어린애처럼 되어 가십니다. 한번은 화장실에서 넘어지셔서 팔이 부러져 병원에서 기브스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까 답답하신지 밤새도록 기브스의 붕대를 모두 풀어버리셨습니다.

그 때 제가 얼마나 화가 나던지 막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무나 놀란 어머니는 그 때부터 제가 무서운지 슬슬 피하십니다. 그 때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면서 돌봐드리지 못했던 것이 지금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만든 많은 단어 중에 가슴을 젖게 하는 단어는 ‘용서’와 ‘용납’입니다.

성경에서 제일 감동을 주는 내용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서 탕자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는 사실은 결심은 잘 하지만 번번이 넘어지는 연약한 존재가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탕자 아버지의 저 깊은 용서의 품이 너무나 아늑하고 따스해 보입니다. 짐승들은 용서를 모릅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용서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원숙한 인격의 소유자가 못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약함과 허물을 잘 아시는 주님은 바울을 통해서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전히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을 무조건 용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탕자처럼 아버지께 돌아와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자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은 연약해서 회개하고는 다시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18:22에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 연로하신 부모님이나 자녀들에게 무슨 잘못이나 허물이 있든지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마시고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 때 주님은 더 많은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을 품고 살면 많은 손해를 입게 된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됩니다.

1. 그러면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무슨 손해를 보게 됩니까?
세 가지로 손해를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평안 대신 어둔 삶을 살게 됩니다.
히12:15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라 했습니다. 쓴 뿌리는 나쁜 감정의 뿌리로 미움이나 원한 같은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쓴 뿌리에서 쓴 싹이 나와 기쁨과 평안을 잃게 됩니다.  

더 나가서는 용서하지 않는 마음에서 쓴 뿌리가 나와 남편이나 아내, 자녀들에게까지 더럽게 만들므로 어두운 가정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마음으로 용서할 때 막혔던 평안의 샘이 터지면서 온 식구가 기쁨을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여, 그 동안 미워했던 사람들을 진정으로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2)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육신의 병을 가져오게 합니다.
S.L 맥밀른 박사는 「이런 병은 하나도 없다」는 저서에서 모든 질병의 65-80%가 감정적인 요인에서 발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이기심, 시기, 질투, 원망, 증오심, 염려, 죄의식, 두려움, 슬픔, 인정받으려는 욕망, 좌절감’ 등과 같은 어두운 감정을 계속 품고 있으면 그것이 모든 육체의 기관에 영향을 준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분노나 증오가 쌓이면 혈액 속에서 화학적인 균형이 깨어짐으로 결국 ‘위궤양, 장염, 대장염, 고혈압, 심장병, 뇌일혈, 동맥경화증, 신장염, 두통, 정신분열증, 갑산선증, 당뇨증, 관절염’등과 같은 질병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미워하고 있는 사람은 건강하게 사는데 반대로 나는 병들어 버리는 손해를 입는 것입니다.

(3)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마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않은 채 기도하는 것은 죄를 그냥 품은 채 기도하는 것과 같으므로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 시간에 여러분 마음속에 아직도 자기 식구들이나 친척들, 교인들이나 이웃들 중 누구에게 미움이나 용서하지 못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까? 이번 가정의 달을 맞으면서 십자가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용납하심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그러면 어떻게 용서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어느 성도님은 자기에게 많은 해를 끼친 사람을 아무리 용서하려고 노력해도 안 된다며 용서의 방법을 묻습니다.

용서의 방법을 세 가지로 말씀 드립니다.
(1)먼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용서의 원천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범죄 한 후에 부끄러워서 숨어 있었을 때 그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가려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게 하시고 그 가죽으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여기에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인간의 수치를 가리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라는 의로운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할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앞에 나아가서 내 모든 죄를 다 고하고 회개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일서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 했습니다.

이번 유성 모임 때 동기들과 목욕탕에 갔는데 깡패 둘이 먼저 목욕하고 있었습니다. 온 몸에 문신한 모습을 보고 그들이 깡패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 동기들은 쫄았습니다. 흉측하게 문신한 몸을 보면서 목욕하자니 끔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탈의실에서 그들이 옷을 입은 모습을 보니 문신이 전혀 보이지 않고 말끔한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과거 우리는 온 심령이 죄의 문신으로 얼룩졌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이라는 의의 옷을 입혀 주심으로 모든 죄와 수치를 가리어 주시고 자기의 자녀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는 놀라운 체험을 할 때에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뉴질랜드에 파송한 영국 선교사가 어느 주일날 한 지방에서 성찬식을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이 막 무릎을 꿇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교회의 반대편으로 황급히 갔습니다. 그러더니 곧 돌아와서 조용히 제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성찬식이 끝난 후 선교사는 그를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그 이상한 행동을 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때 그는 대답하기를 “내가 막 무릎을 꿇으려고 할 때, 나의 원수가 내 뒤에 앉아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내 아버지를 죽여서 그 피를 빨아먹은 이웃 종족의 추장입니다.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처음에는 복수해야겠다는 충동이 거의 나를 압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주님이 십자가상에 달리실 때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을 위해 기도한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여, 그들을 용서 하시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나이다.’ 그 순간 나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는 강한 느낌이  들면서 원수 옆에 와서 무릎을 꿇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먼저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고 모든 죄를 회개하심으로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란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는 놀라운 체험을 하십시오. 그 때 누구든지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날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빚을 갚는 자세로 모든 자를 용서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탕자처럼 용서 받을 자격은커녕 영원히 저주를 받아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자기 자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용서의 빚, 사랑의 빚을 진 자들입니다. 빚은 갚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면 그 빚을 갚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사랑이 필요한 자들, 용서가 필요한 자들에게 사랑과 용서를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내게 손해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해준다는 것은 너무 힘에 겨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십자가를 지고 용서의 손을 내미는 시간, 놀랍지요. 하나님은 용서를 베푸는 자에게 더 큰 사랑을 부어주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마18:18에서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매인 것을 용서로 풀 때에 하늘에서도 풀리면서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영국 선교의 아버지 리빙스턴은 사랑과 용서의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제3회 아프리카 선교여행을 할 때였습니다. 방퀘올로 호수로 가는 도중, 동행하던 토인들이 5명을 제외하고 모두 배반하고 도망치므로 많은 짐들을 나머지 일행들이 운반하노라 죽을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니 도망쳤던 토인들이 뻔뻔스럽게 찾아와서 다시 받아주기를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모든 일행들은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아무리 사랑의 사람 리빙스턴이라도 도무지 용서할 마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그들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큰 감동을 받고 더욱 충성하는 자들이 됨으로 아프리카 선교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사랑의 빚진 자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날마다 빚을 갚은 심정으로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 자녀나 친척, 이웃이나 직장인들의 잘못을 끝없이 용서하고 용서하십시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용서하도록 힘쓰십시오. 그 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더 큰 사랑과 능력으로 붙들어 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모든 자의 허물을 용납하여야 합니다.
설교 초반에 말씀 드린 대로 ‘용서’는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이라면 ‘용납’은 허물을 그대로 포용하고 감싸주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남의 잘못은 용서해주나, 어느 때보면 다른 이의 허물이나 부족을 받아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왜인지 그 사람 자체가 싫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연약한 내 모습 이대로 주님은 용납하시고 받아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연약함도 하나님이 용납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느 자녀는 화가 날 때마다 연로하신 부모에게 상처를 줍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내게 해준 것이 무엇입니까?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 주었습니까? 아니면 유산이라도 물려주셨습니까? 저는 흙수저로 태어난 것이 너무나 화가 납니다.”라고 합니다. 연속극에 보면, 어느 부부는 상대의 약점과 허물을 갖고 마구 헐뜯습니다.

“2세를 위해서 키 큰 여자와 결혼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속아서 당신같이 난쟁이 똥자루만한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을까?’ 혹은 ‘나는 아담하고 자그마한 여자를 만날 걸, 어쩌다 멀대 같이 키만 컸지, 재주가 메주인데다 느리기 짝이 없는 여자와 결혼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내도 이제 질 새라 ‘나는 돈이 많은 남자와 한번 살아봤으면 원이 없겠어요.’ 혹은 ‘나는 당신같이 쩨쩨한 남자에게는 질렸어요. 아주 박력 있고 통 큰 남자와 살아봤으면’라고 공박합니다. 고칠 수 없는 서로의 부족과 약점을 가지고 공격의 재료로 삼습니다. 그 결과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심어줍니다. 농담으로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부부로 만들어 주신 것은 서로의 허물을 용납하고 그 부족을 채워주기 위해서입니다. 부부 여러분이여, 사는 날이 많아질수록 여러분의 남편이나 아내가 허물과 약점이 더 많이 발견될 것입니다. 그 허물을 할 수 있는 한까지 십자가 사랑으로 용납하시고 그 부족을 대신 메워 주도록 힘쓰십시오. 그 때에 점점 부부의 화목이 농익어 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일종의 사랑의 훈련장소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불신자입니까? 아마, 여러분의 신앙이 자랄수록 남편에 대한 불만은 점점 자라갈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절대로 불평이나 비판의 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남편은 점점 교회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의 남편과 짝 지워주신 것도 큰 뜻이 있는 줄 알고 그 허물도 다 용납하시고 그 허물의 발을 무릎을 꿇고 씻어 보십시오. 그러면 믿는 아내의 그러한 십자가 사랑 앞에 녹아지고 영혼이 부활하는 날을 만날 것입니다. 과거에 말씀드렸던 예화입니다.

과천교회 김찬종 목사님이 쓰신 책에 보면 그 교회 최미영 집사님이 남편을 전도한 간증이 나옵니다. 그 분의 남편은 결혼하고 처음에는 교회를 다니더니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 뒤부터 교회와 발을 끊었습니다. 거의 4년 동안 혼자 교회를 나오면서 기도도 많이 했으나 남편은 교회 나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 3월 15일 철야기도 시간에 성령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남편 전도를 위해서 밀알이 되기로 결심하고 남편을 위해서 사랑으로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에는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히터를 틀어 차 안을 따뜻하게 해놓습니다. 남편은 무좀이 대단히 심해서 성한 발톱이 별로 없을 정도로 모두 상했습니다.

예전에는 보기도 싫었으나 은혜 받은 뒤부터는 퇴근한 후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씻어 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면서 발을 붙잡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고 지금은 전철에서 성경을 읽을 정도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무좀도 고쳐주시고 발톱도 새로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해서 어느 집사님은 믿지 않는 남편에게 입으로 강하게 비판만 합니다. 모처럼 교회를 나왔더니 술 담배 당장 끊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당신 교회 나가면 옆에 사람들에게 담배 냄새가 날까봐 신경이 쓰여요.’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술 담배보다도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제는 설교조의 잔소리는 멈추고 남편의 허물의 발을 씻기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번 가정의 달 동안 기도하십시오. ‘오, 주님, 내게 십자가 사랑을 부어주셔서 이제부터는 사랑의 빚진 자로써 살게 하옵소서. 연로하신 부모님, 우리 부부와 자녀들, 친척들과 이웃의 모든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옵시고, 다른 이의 허물을 용납할 뿐 아니라 그 허물의 발을 씻어 줄 수 있는 밀알이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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