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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양실 (2017-12-10 18:20:40, Hit : 251, Vote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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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립 57주년 기념주일 설교(2017년 12월 10일)


(위 사진은 1977년 김태복 목사 위임식, 아래 사진은 1982년 건축당시 천막교회 앞)  

교회의 의미와 사명    
              (고전12:22-31)

오늘은 홍익교회 57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1960년 12월 15일 총회 교육부 간사로 시무하시던 김관호 목사님과 몇 가정이  예배드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홍익교회란 이름은 1962년 홍익동시장 이층으로 교회를 옮긴 후 지어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서울노회 중의 가장 작은 교회로 시작되었지만 57년이 지난 지금은 서울노회에서 열 번째 큰 교회가 됨으로 132년 역사를 가진 남대문교회와 맞먹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성장한 것은,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성도님들과 지금은 계단을 오르기도 힘들어 하시는 연로하신 성도님들, 제게 주례를 부탁하러 올 때는 그처럼 팔팔하던 청년들이 지금은 아저씨, 아줌마가 되어 있는 분들, 그리고 오늘 은퇴하시는 일곱 분들을 포함하여 앞장서서 충성을 다해 오신 모든 성도님들의 희생적인 헌신들 때문입니다. 홍익교회 장점은 57년 동안 세분 담임목사만 모실 정도로 거의 분파가 없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은 최영걸 목사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충성하심으로 더욱 성장 발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형편없이 떨어져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런 분들은 말하기를 “저는 모태신앙이지만, 교회가 싸움질이나 하면서 제 구실을 못 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교회를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언제나 성경대로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교회는 나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유명한 분의 설교를 들으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혹은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구지 교회 나가지 않아도 불쌍한 고아나 고학생, 거지나 병든 이를 돌보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 아닙니까?”라고 강변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도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교회관이 바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1. 그러면 교회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세 가지로 배울 수 있습니다.  
(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지체입니다.    
27절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각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체들인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몸인 교회에 철저히 소속되어 있을 때만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5:5에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이나 발이 몸을 떠나 혼자 있겠다고 하면 곧 병들어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예배드리고 혼자 봉사하겠다고 하면서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교인들은 결국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학식유무, 각 나라, 각 지역으로 나누어 살았지만 이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변화 받아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13절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다 한 성령으로 마시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처럼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실 때에 어느 분은 손, 어느 분은 발, 어느 분은 심장 등의 지체로 만드신 후에 성령의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14절에서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교인이라고 하면서 어느 교회에 소속되지 않는다면 마치 손 혼자나 발 혼자서 무엇을 하겠다는 태도와 다름없습니다.

농부의 손이 열심히 움직일 때에 양식이 생기고 입이라는 지체가 열심이 먹을 때에 온 몸이 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모든 지체가 열심이 서로 도와가며 충성할 때에 너도 살고 나도 살게 되며 동시에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건강한 교회관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죤 목사님에게 제자들이 ‘어떻게 교회가 이렇게 부흥되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스펄죤 목사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제자들을 지하실로 안내했습니다.

지하기도실에서는 두 명의 권사님이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 권사님들이 교회와 저를 위하여 기도하므로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할머니 권사님들의 불타는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이 설교자와 교인들에게 부어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얼마나 명쾌하고 바른 교회관입니까? 그런데 비해서 한국 장로교에서 제일 큰 교회라는 명성교회의 김삼환 목사님은 어떻습니까?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교회를 세습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교회 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은 수년 전에 세습 금지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분으로 앞장서서 지켜야 할 교단법을 공개적으로 어기고 있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목사님은 한 때 한국장로신문이 전국장로회총회에서 여론조사 한 결과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으로 선정된 분입니다. 더 나가서는 ‘제2의 한경직 목사님’이라고 추앙 받을 정도로 존경을 받던 분입니다.

그런데 말년에 수많은 목회자들과 신학교 교수들, 신학생들이 반대하고 있음에도 세습을 강행하는 노욕을 부리고 있습니다. 교회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명성교회를 한국 장로교 최대교회로 만든 공이 자기에게 있다는 교만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강하신 도우심 뿐 아니라 수많은 성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명성교회가 이룩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홍익교회는 지체 간에 서로 협력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교회는 지체끼리 서로 존귀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21절에서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눈이나 머리가 손이나 발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여서 “너는 쓸모가 없다.” “너는 보잘 것 없다.”라고 하거나 “나를 떠나가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왜냐하면 손이나 발이 떠나가면 눈이나 머리도 버티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에는 어느 것 하나라도 쓸모없이 붙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몸에 이빨이 많기 때문에 그 중에 하나가 없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빨 하나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눈이 두 개니까 한 개가 없어도 될 것 같지만 한 쪽 눈이 없어 보세요. 얼마나 불편하고 보기가 흉측하겠습니까? 아마 여러분은 우리 몸에 가장 필요 없는 것이 맹장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맹장도 하나님이 필요하시기 때문에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맹장은 작은창자에서 큰창자로 가는 위치에 있는데 작은창자에는 병균이 별로 없지만 큰창자에는 변과 아울러 많은 병균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맹장에는 병균을 막는 임파구가 있어서 병균이 큰창자에서 작은창자로 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 같고, 어떤 사람은 필요가 없는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저는 목회 초기에는 어떤 교인이 자꾸 문제를 일으킴으로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하나님 저 사람과 목회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어디 먼데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기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그 사람도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 보내신 것이다.’라는 깨달음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 사람을 억지로라도 품고 목회했더니 더 성숙한 목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차별이 있으면 안 되며, 귀한 자와 천한 자가 나뉘어서도 안 됩니다. 그 교회가 성숙한 교회인가 아닌가를 구분하려면 교인들 중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자들을 교인들이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느 교회는 사찰이나 주방에서 일하는 봉사자들, 청소하는 분들을 마치 종 부리듯이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몸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특별히 보호해주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23-24절에서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 하사”라고 했습니다. 어떤 가정이 좋은 가정입니까? 제일 부족한 식구나 어린 식구들을 특별히 감싸주는 가정이 아닙니까?

우리 여인들이 거울 앞에서 얼굴 중에 가장 자신이 없는 부분을 가장 신경을 써서 화장을 하고, 몸에 상처가 있으면 아름다운 옷이나 장신구로 가려 줍니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가난한 자나 병든 자, 부족한 자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 주고 더 따뜻한 사랑으로 대해 주는 교회가 아닙니까?


어느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학벌이 없는 분들은 중직이 못 됩니다. 선출이 되어도 몇 백 만원, 혹은 몇 천 만원을 기념품비로 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익교회는 너무나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지난달에 인터넷 신문인 ‘뉴스앤조이’에서 원로목사 특집으로 저와 인터뷰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자가 저에게 ‘홍익교회가 좋은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묻기에 저는 주저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홍익교회는 남녀노소, 빈부격차, 모든 지역 사람들, 노년층과 젊은 층,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모두 하나가 된 교회입니다. 거의 분파가 보이지 않고 장로로 선출된 분들 중에 학벌이 높지 않는 분들이나 빈한한 분들도 적지 않은 공평한 교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갑질을 하고, 학벌 좋은 자들이 학벌 낮은 자들을 무시하기 일 수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모두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구원 받아 한 몸을 이룬 형제자매요, 지체인 줄 알아서 서로 존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특별히 약자들을 더 감싸주면서 동고동락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26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라고 했습니다.

한국교회 초기인 1893년경에는 한국사회에 칠천반(七賤班)이라 하여 포졸, 광대, 고리장, 무당, 기생, 갖바치, 백정 등은 아주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백정은 인구조사에서 제외되었고, 상투를 올릴 수 없고, 망건이나 갓을 쓰지도 못할 정도로 인간이하로 대했습니다. 그 때 박성춘이라는 백정은 자기 두 딸을 선교사가 운영하는 학당에 보내어 공부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박성춘이 전염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승동교회 모삼열 목사님과 제중원 담당의사 에비슨 선교사가 백정마을을 찾아와 완쾌될 때까지 계속 왕진하면서 정성껏 치료해 주었습니다. 이 일로 감동받은 박성춘과 가족들 모두 승동교회에 출석하였고 나중에는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러자 교회 주축이었던 양반들이 백정과 같이 예배드릴 수 없다고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모삼열 목사님에게 박성춘을 교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며 교회출석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삼열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며 그들을 권면했으나 결국 양반들은 모두 나가서 따로 예배당을 세웠는데 그 교회가 바로 안동교회(수송교회라는 설도 있음)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씨조선을 병들게 했던 양반 상놈의 계급은 초기한국교회에 의해서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 여성들도 남성우대 사회구조 속에서 이름도 ‘음전이’ ‘간난이’ ‘언년이’ ‘분례’ 다른 말로는 ‘똥례’라고 짓고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함부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설립되고 여성들이 세례를 받으면서 이름을 지어 주거나 제직으로 임명함으로 여성해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교회가 세운지 130년 지난 지금에도 합동측에서 여성들이란 이유로 목사안수를 주지 않고 있으니 너무나 한심합니다. 성도여러분들이여, 교회 안에서 세상 기준으로 누구를 차별한다는 것은 복음적이 아닙니다. 오직 교회는 지체 간에 서로 존귀하게 여기고 특별히 약자들을 더 감싸줄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될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교회는 맡겨주신 대로 충성하는 곳입니다.  
29-30절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여기서 사도는 총회장 같은 분들이요, 선지자는 설교하는 사람,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 병 고치는 은사는 이적을 행하는 사람, 돕는 것은 봉사자, 다스리는 것은 장로님 같은 치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직책이나 은사는 성령은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28절에서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더 큰 역할을 나타내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지고 계시던 직책이나 능력을 각 지체들에게 성령을 통해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직책이나 은사는 하나님이 맡겨주셔야 받는 것이지, 내가 원한다고 해서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교회가 무엇을 맡기려고 하면 자기는 그런 직책이 싫다고 거절합니다. 특별히 연말이 되면 오히려 받은 직책을 그만 두려고 하는 분들이 많아 교역자들이 골치가 아픕니다.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성령은 감독과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감독이 무슨 직책을 주시든, 무슨 은사를 주시든 맡겨주시는 대로 충성해야 마땅합니다.

그 때에 성령께서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은 은사나 직책을 따라 열심히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못 마땅했던 교인이 누구인 줄 압니까? 자기 은사나 직책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다른 교인들을 비판하기만 바쁩니다. 왜 고린도 교회가 혼란에 빠졌습니까? 자기가 받은 직분이나 은사만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직분 자들과 다른 은사를 받은 자들을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의 고백하는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자기는 평소 교회 안에서 학벌이 높은 분들이나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은 분들과만 교제하면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교인들을 은근히 무시해 왔었는데 자기 부모 장례식 때 크게 깨닫게 되었답니다. 평소 자기가 은근히 업신여기던 분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밤늦게까지 봉사하고 그 추운 겨울날 선산까지 따라와 관을 운반해 주고 음식 봉사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방이나 청소, 주차장 봉사, 교사와 찬양대, 구역 등등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충성하는 분들이 있기에 교회가 든든히 서 간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뿐 아니라 뜨거운 여름날 땀 흘리며 수고하는 분들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제공하고는 했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31절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왜 교회가 시험에 듭니까? 사랑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논에 물이 가득차면 잡초나 올챙이, 거머리가 있을지라도 농부의 마음은 기쁘지만, 가물어 갈라진 논과 온갖 잡초와 죽은 올챙이들을 보면서 농부의 가슴은 타들어 갑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 이십니다.

교회가 사랑의 물이 가득하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잘난 사람, 못난 사람들이 서로 용납하고 덮어줌으로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게 역사하십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홍익교회는 오직 그리스도 중심으로 하나가 될 뿐 아니라, 각자 받은 직분과 은사로 서로 돕고 사랑으로 협력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그러면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대형교회가 되는 것입니까? 물론 교회는 날마다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커진 만큼 사명도 큰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 땅에서 남은 사역을 대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서 자기가 가지셨던 은사를 자기들의 지체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나도 예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지체, 저 지체, 이 은사, 저 은사, 이 달란트 저 달란트가 모여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룸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위대한 능력을 이 땅에서 대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선 교회의 사명은 예수님을 대신으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계신 사회 약자들, 즉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가까운 지역부터 복음을 전하고 사랑의 봉사를 나타내야 합니다. 교회는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명하시면서 지역사회의 사랑의 등불이요, 공의의 지킴이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익교회가 지금까지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봉사를 하고 점점 확대해 가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요즈음 농어촌은 인구도 점점 줄어들고 빈집도 많아가고 노인들만 덩그러니 남았기 때문에 목회하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그래서 최근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은 목회방법을 바꾸어 신자든지 불신자든지 관계하지 않고 주민들을 자기 교인처럼 섬기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습니다. 뉴스앤조이에서 발간한 ‘시골교회’라는 책자에는 15교회 사례가 나오는데 그 몇몇 농어촌교회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경북 김천 천성교회 마을 주민들을 위해 목욕탕을 제공합니다. 주민들이 목욕하고 싶다는 전화를 하면 김영만 목사님이 차량으로 그들을 교회 목욕탕으로 모셔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민들은 교회와 그 목사님을 너무나 좋아한다고 합니다. 전남 완도 보길중앙교회는 할머니들 위해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충북 청원 부감감리교회 황호천 목사님은 노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형광등이나 전자제품을 고쳐주기도 합니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인천 강화 야차도에서는 물건을 사려면 배를 타고 한 시간 반이나 걸려야 되는데 야차도교회는 그런 형편을 고려하여 한 평 정도의 크기로 무인 가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편의점처럼 24시간 언제든지 필요한 물건을 사고 돈 통에 돈을 넣고 가게 만들므로 주민들이 크게 고마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아이스크림이라고 합니다.

저도 농촌교회 7년 경험이 있기에 어려운 농어촌교회를 위해 박봉을 무릎 쓰고 헌신하는 목사님들의 모습들이 가슴 뭉클하게 만듭니다.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 땅에서 남은 사역을 대행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크다고 할지라도 사회 앞에 사랑과 공의를 나타내지 못한다면 잎만 무성할 뿐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무화과나무 같습니다. 그런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됩니다.

이제 57주년 성년의 나이가 된 홍익교회 성도 여러분들이여, 지금까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성장발전하며 많은 사역을 감당한 것처럼 앞으로 더욱 사회 앞에 그리스도의 남은 사역을 대행하는 교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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