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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양실 (2018-05-06 17:49:05, Hit : 144, Vote : 22)
Subject  
   홍익교회 설교(2018. 05. 06. 어린이, 어버이 주일)
  가정의 화목        (2018. 05. 06.)
         (골3:18-21)

오늘은 어린이 주일 겸 어버이 주일입니다. 이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가정의 화목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있다면 바로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목한 가정은 계속해서 행복을 퍼 올리는 우물과 같다면, 불화한 가정은 계속 불행을 퍼 붇는 쓰레기장과 같기 때문입니다.  J. H 페스탈로치라는 교육자는 “가정의 화목은 지상의 가장 빛나는 기쁨이다.”라 했고, 브라우닝이라는 시인은 “즐거운 가정은 일찍 맛보는 천국이다.”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교회를 시무했던 김상복 목사님은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천국과 가장 흡사한 것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가 주님과 서로를 위해서 평화와 사랑 가운데 함께 사는 가정입니다. 반면, 이 세상에서 지옥과 가장 흡사한 것은 부모들이 싸우고 말다툼하며 자녀들을 악과 악한 세력에 내버려 두는, 그리고 죄와 부정으로 손상된 경건치 못한 가정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천국입니까, 아니면 지옥입니까?”라고 했습니다.

가정이 왜 좋습니까? 식구들이 내 편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식구가 성공할 때 진심으로 기뻐해 주기도 하지만, 때로 자녀가 실패하거나 탕자나 범죄자가 되어 있더라도 진정으로 아파하고 같은 편이 되어주기에 가정은 좋은 것입니다. 제가 소리지와 홍익교회 홈페이지에도 올린 글이지만, 은퇴한 지 10년 동안 가장 가슴 아팠던 때가 큰아들 용민이가 국회의원에 출마한 후 낙선했을 때입니다. 8년 전에 성인 방송에서 했던 막말 파문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부부에게도 사방팔방에서 걸려오는 전화마다 비난 일색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느 교단 목사는 ‘목회자가 어떻게 자녀를 키웠으면 그 모양인가? 엘리 제사장의 자녀 홉니와 비느하스와 무엇이 다른가?’라면서 큰소리로 야단치듯이 신랄하게 비난을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모든 전화 코드를 빼낸 채 보내야 했던 한 달은 참담 그대로였습니다. 일생 존경받는 목회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런 훈계조의 비난을 들으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노회나 목회자 모임에 가면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느낌이 들어 그런 모임조차 참석을 꺼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당사자인 아들의 입장은 얼마나 절망적이었겠습니까? 후에 아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런 절망 가운데서도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상처를 끝까지 안아주면서 격려하는 부모님과 가족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추운 날을 견뎠더니 지금은 지상파 방송에서도 여기저기서 부르는 봄날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족이 좋은 것은 내 편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족이라고 하면서 조그만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서 사정없이 비난을 퍼부을 때 과연 견딜 수 있겠습니까? 결국, 가출이나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 그러면 화목의 가정으로 만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는 가정이 반드시 되는 것입니다.  

1. 아내들은 남편에게 주 안에서 순복할 때 가정 화목의 복을 받습니다.  
18절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 했습니다. 순복은 아내들의 의무입니다. 이러한 말은 현대를 사는 여인들에게는 대단히 못마땅한 말처럼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느 사람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요, 법칙입니다. 성경은 세 가지 이유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 한다고 명하고 있습니다. (1) 창조의 질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남자를 창조하시고 그다음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들셨습니다.

(2) 신성의 질서 때문입니다. 고전 11:3 말씀을 보면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3) 아내가 남편에게 순복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딤전 2:14에 나옵니다.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먼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내들은 자존심이 상한다 하더라도,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 때만이 부부의 질서, 부부의 행복, 가정의 화목의 복을 보장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대로 아니하고 ‘부부의 행복, 가정의 화목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욕심에 불과한 것입니다. 남편에 대한 순종, 그것은 바로 성경의 원리요, 하나님의 뜻으로 아무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요구하는 남편에 대한 순종은 “주 안에서”라는 단서가 있습니다. ‘교회를 나가지 말라든지, 기도하지 말라’ 혹은 성경에서 금하는 일을 요구하는 일까지 순종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선 주님의 말씀이 우선이요, 그다음이 남편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일을 요구하지 않는 한, 순복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오셔서 명령하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내들도 그런 순종의 자세를 가져 보십시오. “내 남편은 마음에 맞지 않은 것이 너무 많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겠나이다.”라고 해보십시오. 그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배 가득히 기적의 고기로 채워주신 것처럼, 여러분의 가정에 기적의 역사를 베풀어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어느 설교자는 말하기를 “남편을 왕처럼 존경하고 위해 보십시오. 결코, 무책임한 폭군이 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은 무시당하는 남편입니다. 인격이 무시당하니까 의지할 것은 폭력밖에 없습니다. 가정에서 무시당하는 남편은 밖에서도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에서 왕처럼 대우받는 사람이라야 밖에서도 자신만만하고 성공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19세기 말엽, 미국 디트로이트시의 전등회사의 어느 젊은 기사는 날마다 10시간씩 근무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뒤뜰에 있는 낡은 오두막집에서 새로운 엔진을 제작하기 위해서 밤늦도록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웃 사람들도 ‘모자란 사람’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 이 청년을 적극적으로 도왔는데, 바로 그의 아내였습니다. 밤에는 석유 램프를 들고 와서  비춰줍니다, 추운 겨울에 손이 얼었으나 남편의 연구를 3년 동안이나 도왔습니다.  

과연, 이 청년이 30세 되던 때인 1893년 어느 날, 온 동네가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서 내다보니, 말이 없는 수레가 부부를 태우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바로 헨리 포드로, 훗날 그의 차가 세계시장을 석권하므로 자동차 왕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던 것입니다. 그가 50세 되던 해 누가 묻기를 ‘이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라고 했을 때 대답하기를 ‘내 아내와 같이 있을 수만 있게 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개의치 않겠소.’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들이여, 여러분도 여러분의 남편에게서 이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이여, 이번 가정의 달부터 하나님의 법칙대로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부부의 행복과 가정의 화목의 은혜를 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남편들은 아내들을 주 안에서 사랑할 때 가정 화목의 복을 받습니다.  
19절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희생의 사랑을 보아산 것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머리요, 아내는 몸이라고 했습니다. 머리가 몸에게 순종만 강요하고 혹사만 시키면서 휴식이나 음식도 주지 않는다면, 마침내 몸이 병이 들 것이요, 그 결과 머리인 남편까지도 함께 극심한 고통을 만날 것입니다.

아닙니다. 머리는 때를 따라 몸에게 먹을 것을 주고, 휴식을 주고 아플 때는 열심히 치료해 주어야 마땅합니다. 그처럼 남편은 아내의 연약함을 돌보아 주고 보살펴 주고 보양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한국 남편들은 아내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무시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아직도 가부장 제도나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철저히 아들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내아이가 울면 젖꼭지로 울음을 달래고 계집아이가 울면 실타래로 울음을 막았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한국 여성들의 일생은 종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학교에도 안 보내고 이른 새벽부터 밤중까지 그 많은 식구의 밥을 해대고 찬 개울에 가서 빨래하고 방아 찧고 뙤약 볕에서 밭일해야 했습니다. 어디 나들이를 가더라도 남편은 멋있게 차려입고 멀리 앞질러 가고 아내는 뒤에서 아이 업고 양쪽 손에 보따리를 들고 허둥지둥 따라갈지라도 불평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특히 남자들은 여자들을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족쇄로 묶어 놓았습니다. ‘칠거지악’은 무엇입니까? (1) 시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을 경우, (2) 자식을 낳지 못했을 경우, (3) 음란하여 부정을 저질렀을 경우, (4) 시기해서 강짜를 부릴 경우, (5) 전염될 소지가 있는 불치의 병이 있을 경우, (6) 말이 많아서 집안의 화목을 깰 경우, (7) 손이 거칠어 도둑질을 할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이혼해도 무방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즈음 우리 여자분들은 감사해야 합니다. 현대식 주방, 전기밥솥, 세탁기, 렌지, 냉장고, 청소기, 보일러, 더운물, 목욕실 등등, 얼마나 편해졌는지, 옛날 여인들의 100분지 1의 수고도 안 할 정도로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뿐입니까? 요즈음은 모든 봉급이 은행 통장으로 들어오므로 남자들이 용돈을 타다 써야 됩니다. 그래서 덕소 한강가 고급 음식점에 가면, 자가용을 몰고 온 여자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대신 남자들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과 고기 몇 점을 먹다가 초라하게 퇴근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불평합니다.

더 나가서는 요즈음 강남에 사는 부자 여인들은 애인을 가지는 것이 유행이랍니다. 연하의 애인을 가지면 금메달감, 연상의 애인을 가지면 은메달 감, 아무도 없는 여인은 동메달 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자들은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사회에서는 남존여비 사상이 남아 있어서인지  여전히 많은 남편은 아내를 은근히 무시하거나 천대하기 일쑤요, 아직도 아내를 괴롭히는 남편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어떤 여인은 주정꾼 남편을 잘못 만나서 일생 고생을 바가지로 합니다. 유명한 부흥사 무디는 말하기를 “지옥을 보고 싶으면 주정꾼의 가정을 들여다 보라.”고 했습니다. 술을 많이 먹고 와서 아내를 욕하고 때립니다. 아이들은 귀퉁이에서 벌벌 떨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 하고많은 날 술을 마시다가 병들어 입원하여 그나마 있던 집도 다 팔아먹고 먼저 갑니다. 진실로 주정꾼이나 노름꾼의 가정, 난봉꾼이나 포악한 사람의 가정은 지옥과 같습니다.

남편 여러분들이여,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어느 분은 말하기를 “부인을 왕후처럼 아끼고 사랑해 보십시오. 그 부인은 날마다 아름다워지고 가정을 위해 헌신적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가정의 머리요, 제사장과 같습니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남편이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가정예배를 인도하는 가정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남편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아내가 못마땅한 점이 많을지라도 베드로의 고백처럼 말씀을 의지하고 주님이 교회를 위해 희생의 사랑을 준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리라는 결심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자녀들이 부모에게 주 안에서 효도할 때 가정 화목의 복을 받습니다.
20절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순종하되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특별히 성경 말씀에 입각한 명령에는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자녀는 부모의 말씀에 다 순종하는 데, 교회 나가자는 말에는 조금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제대로 순종하지 못해도 ‘교회 나가 구원받자’는 명령에 순종한다면 믿는 부모들에게는 최고의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을 잘 믿으시다가 돌아간 부모님의 장례식 때, 기독교식으로 하는 것을 불만을 품고 술 먹고 행패를 부리는 자녀들을 볼 때는 ‘어떻게 저렇게 불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 화가 치밉니다. 그러나 사실은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에 ‘나는 효도를 다 했다’라고 장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처럼 큰 거짓말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효도가 너무 힘들기에, 제5계명에만 축복의 단서를 붙이시기를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시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부모를 공경한 사람들은 다 땅의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을 공경한 이삭은 땅의 복을 받았고, 요셉이 그랬습니다. 시어머님을 공경한 룻은 바로 다윗의 할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조상의 반열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으나 이미 돌아가셨다면 주변이나 교회 안에 계신 노인들이라도 효도하는 마음으로 돌보아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도 효도의 복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미국 신문에 난 기사입니다. 내용인즉슨, 자기 아버지가 수년 전부터 중풍과 치매로 병석에 누워 계시어 그동안 밥도 먹여 드리고 대소변도 받아냈는데,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이제는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어서 광고를 냈습니다.

“아버지를 팔려고 하니, 만 달러에 사 갈 사람이 있으면 전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광고가 나가자 어떤 젊은 남자로부터 자기가 사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광고 낸 분이 그 젊은이에게 환자를 돌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 1주일간 더 생각해 보고 꼭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 전화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일주일이 되는 날 그 젊은이가 역시 아버지를 사서 모시기로 부부가 합의했다고 전화해왔습니다.

광고 낸 분이 그 젊은이에게 결심한 이유를 물어봤더니 대답이 감동적입니다. 자기 내외는 어릴 때 고아원에서 부모님의 얼굴도 모르고 자랐으며, 지금은 결혼하여 아들, 딸을 낳고 복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모시고 살 수 있는 분이 계시면 좋겠으며, 아이들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아버지를 사서 모시면서 효도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광고 낸 분이 정말로 우리 아버지를 사서 모실 결심이 되어 있으면 와 모시고 가라며 주소를 알려주었습니다. 젊은이 내외는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 보니 아주 큰 집이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니 하인이 나옵니다. 따라가 보니 거기에 노신사가 앉아 계셨습니다. 그 신사는 “내가 나이는 많고 자식이 없기에 자식이 될 만한 착한 사람을 구하려고 거짓 광고를 냈습니다. 젊은이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너는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되었으니 나의 모든 재산을 네게 주겠다. 빨리 집에 가서 네 아들과 딸들을 데리고 이곳에 와 함께 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까?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들이여, 효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나, 말씀에 의지하여 효도를 다 해 보십시오. 그러면 부모님은 내게 갚아 주시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약속대로 대신 갚아 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부모들은 자녀를 격노케 하지 않아야 가정 화목의 복을 받습니다.
21절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하노라” 했습니다. 앱 6:4에 보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자녀가 노여워지는 것은 무슨 용돈을 많이 주지 못하거나, 좋은 교육을 많이 해주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즈음 큰 화제가 되고 있는 뉴스가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부인이요, 일우재단 이사장인 이명희 씨의 갑질 이야기입니다.

자기 집 가정부나 운전기사, 혹은 회사직원들에게 얼마나 욕을 퍼 붇고 폭력을 가했는지 계속 폭로가 되고 있고 광화문에서 회사직원들이 항의집회를 할 정도입니다. 그러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두 딸인 조현아, 조현민 씨의 갑질이나 욕설도 엄마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조금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 엄마도 서울대학교를 나왔고 두 딸도 유학파입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도 가정에서 배운 교육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교훈입니다.  

특별히 성경에 보면, 자녀들이 노여워지는 것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지 않을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음식을 먹이지 않을 때 영적으로 노여워지고 격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부모라면서 성경 말씀이나 사명감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언제나 세상의 교훈이나 학교성적 타령, 좋은 대학 타령만 한다면 자녀의 영은 점점 격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녀들의 영이 가장 결정적으로 격노하는 것은 신앙적인 본을 보이지 못할 때입니다. 제임스 독슨은 자녀교육에는 4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1) 부부간의 원만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자녀들은 원만하게 자랍니다. (2) 부부의 신앙과 헌신입니다. 보지 않는 것 같아도 자녀들은 자기 부모들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자기 부모들이 신앙과 헌신 속에 사는 모습이 보인다면 자녀들도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3) 안정된 가정입니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합니다. (4) 건강한 교회에 출석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많으나 건강하지 않은 교회가 많습니다. 건강치 못한 교회는 시험에 잘 듭니다. 교회가 시험이 들면 이상하지요, 가정에도 시험이 듭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고백하기를 자기 교회가 시험이 들어서 목사파와 장로파 사이에 싸움이 생기어 거의 1~2년 동안, 울근불근하고 평안한 날이 없다가, 담임목사가 떠나서야 교회가 안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에 자녀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이미 병든 자녀들, 신앙적으로 노한 자녀들은 돌이킬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격노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적으로 삐뚤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부모는 자기 취향에 따라 교회를 자주 옮깁니다. 자녀들이 교회학의 좋은 교사와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부모는 교회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떠납니다.

아닙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어머니나 아버지 가운데 한  분만이라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책임져 주십니다. 강림교회 최영순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남편이 부산에서 큰 버스운송사업을 하다가 그만 부도가 나서 실패하고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서울로 이사 온 뒤 남편은 경제력을 상실하고 매일 술만 마시더니, 끝내 가출을 했습니다.

그래서 집사님 혼자 다섯 남매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은 목사가 되고, 둘째 아들은 의사가 되고, 첫째 딸은 목사 사모가 되고, 둘째 딸은 대기업의 상무가 되고, 막내 딸은  유학 가서 샌프란시스코의 한 신문사에서 일할 정도로 다섯 남매가 다 훌륭하게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집사님에게 혼자 힘으로 어떻게 자녀들을 다 훌륭하게 키웠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집사님은 “나는 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날마다 새벽에 하나님께 나아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아이들이 들어오면 붙들고 ‘하나님이여, 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을 길러주셨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 중에 누구라도 신앙적인 본을 보인 것만으로도 자녀들은 큰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가정이 언제나 화목함으로 천국의 향기가 나도록 하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남편은 아내를 내 몸같이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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